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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제조 혁신과 AI 전환

등대는 길을 비출 뿐,
배를 몰지 않는다

도요타 생산방식에서 글로벌 등대 네트워크까지, AI 시대 제조 혁신의 계보를 다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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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이 글은 ‘도요타 생산방식(TPS)에서 세계경제포럼 글로벌 등대 네트워크(GLN)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익숙한 서사를 검증한다. 2018년 16곳에서 출발한 GLN은 2026년 6월 238곳으로 커졌고, 그 8년의 기록이 가장 강조하는 교훈은 역설적이게도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프로세스다. 등대 사업장들은 신기술 투자의 약 네 배를 사람과 프로세스에 쓴다. 필자는 이 사실을 근거로 TPS와 GLN을 대체 관계가 아닌 계보 관계로 읽을 것을 제안한다. GLN이 새로 더한 것은 예측의 시간축, 가치사슬 전체로 넓어진 범위, 지속가능성과 인재를 성과로 측정하는 관점, 그리고 산업 차원의 학습 인프라다. 반면 그 성과를 지속시키는 힘은 TPS가 70여 년 전부터 말해 온 ‘현장에서 배우는 조직’에 있다. 아울러 GLN 자료의 선택 편향과 자기보고적 성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한국 제조업이 등대를 ‘따라갈 목표’가 아니라 ‘방향을 확인하는 좌표’로 써야 하는 이유를 논한다.

주제어: 도요타 생산방식, 린 생산, 글로벌 등대 네트워크, 파일럿 연옥, 프로세스 부채, 디지털 전환, 산업 AI

목차 · 11개 절

프롤로그: 등대는 배를 몰지 않는다

등대는 안개를 뚫고 빛을 보낸다. 그러나 등대가 하는 일은 거기까지다. 암초를 읽고, 키를 돌리고, 파도 속에서 속도를 조절하는 일은 끝내 배 위의 사람들이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18년 다보스에서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을 앞서 확산시킨 공장들을 찾기로 하고 그들에게 ‘등대(lighthouse)’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 이 은유는 더없이 적절했다.1 길을 보여 주되, 길을 대신 가 주지는 않는 존재.

그런데 제조 혁신을 둘러싼 담론은 자주 이 은유의 절반만 기억한다. 등대공장 명단이 발표될 때마다 많은 기업이 그 공장들이 쓴 기술의 목록을 받아 적는다. 디지털 트윈, 머신비전, 생성형 AI. 익숙한 장면이다. 1980년대 서구 기업들도 도요타의 간판(看板) 카드를 받아 적었다. 그리고 상당수가 실패했다. 도구는 옮겨졌지만 도구를 낳은 사고방식은 옮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2

이 글은 “도요타 생산방식(TPS)의 시대가 끝나고 글로벌 등대 네트워크(GLN)의 시대가 왔다”는, 최근 자주 들리는 서사를 검증하려는 시도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필자는 이 서사가 절반만 옳다고 본다. GLN은 분명 새로운 것을 더했다. 그러나 GLN이 8년 동안 쌓은 증거가 가장 강하게 가리키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TPS가 70여 년 전부터 말해 온 자리, 곧 현장에서 배우는 사람이다.

1. 질문을 다시 세우기: 무엇과 무엇을 비교하는가

먼저 비교의 범주부터 정리해야 한다. TPS는 한 기업이 수십 년에 걸쳐 진화시킨 생산 철학이자 운영 체계다. 도요타 스스로 설명하듯 그 뿌리는 도요다 사키치의 자동 직기와 도요다 기이치로의 적시생산 구상에 있고, 오노 다이이치가 194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초에 걸쳐 혼샤 기계공장에서 거듭된 시행착오로 토대를 세운 뒤 1960년부터 전 공장으로 확대했다.3 반면 GLN은 WEF가 맥킨지앤드컴퍼니와 공동으로 설립한 인증·학습 네트워크로, 선정된 사업장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장(場)이다.4

하나는 ‘어떻게 만드는가’에 관한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누가 잘 만들고 있는가’를 선별하고 공유하는 장치다. 둘을 같은 저울에 올려 승패를 가리는 것은 일종의 범주 오류다. 오히려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GLN이 8년 동안 모은 증거는 TPS의 무엇을 반박하고, 무엇을 재확인하며, 무엇을 새로 더하는가?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표현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토머스 쿤이 이 개념을 제시했을 때, 패러다임 전환은 이전 체계와 새 체계를 같은 척도로 비교하기 어려운, 이른바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을 동반하는 단절이었다.5 만약 GLN의 성공 요인이 TPS의 원리 위에 서 있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절이 아니라 누적적 진화다. 이 글의 가설이 바로 그것이다.

제조 혁신의 계보 1950년대 도요타 생산방식 체계화, 1990년 린 생산 명명, 2013년 인더스트리 4.0 권고, 2018년 글로벌 등대 네트워크 출범, 2026년 238곳과 AI 운영 재배선으로 이어지는 흐름. 도구는 간판에서 센서, 데이터, AI로 확장되고, 사람·흐름·낭비 제거·현장 학습이라는 원리는 계승된다. 도구의 확장 간판 → 센서 → 데이터 → AI 1950년대TPS 체계화도요타 1990린 생산 명명MIT 연구진 2013인더스트리 4.0독일 권고안 2018GLN 출범WEF·맥킨지, 16곳 2026AI 운영 재배선238곳 원리의 계승 사람 존중, 흐름, 낭비 제거, 현장 학습
그림 1. 제조 혁신의 계보: 교체가 아닌 계승과 확장 (필자 작성. 인더스트리 4.0 연도는 Kagermann 외6, GLN 연도와 사업장 수는 WEF·맥킨지 공개 자료 기준4)

2. TPS가 남긴 것: 두 기둥, 그리고 사람

도요타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TPS는 두 기둥 위에 서 있다.7 첫째는 지도카(自働化)다. 한자에서 보이듯 단순한 자동화(自動化)가 아니라 ‘사람의 지혜가 더해진 자동화’를 뜻한다. 설비나 품질에 이상이 생기면 기계가 스스로 멈추거나 작업자가 줄을 당겨 라인을 세우고, 그렇게 드러난 문제의 원인을 없애 재발을 막는다. 둘째는 적시생산(JIT), 곧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만 만드는 흐름의 원리다. 도요타는 이 체계의 전제를 ‘작업자의 일을 쉽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7 지도카의 기원 역시 베를 짜는 어머니의 수고를 덜어 주려던 사키치의 발명에 있다.8

오노는 흐름을 방해하는 낭비(무다)를 일곱 가지로 정리했다. 과잉생산, 대기, 운반, 가공 그 자체, 재고, 동작, 불량이다.9 흔히 여덟 번째로 덧붙는 ‘활용되지 않는 사람의 창의성’은 오노의 원래 분류가 아니라, 이후 서구의 린(lean) 문헌이 TPS의 인간 존중 정신을 명시하며 더한 것이다.10 사소해 보이는 이 구분은 TPS가 원형 그대로 머문 체계가 아니라 해석되고 확장되어 온 체계임을 보여 준다. 1990년 MIT 연구진이 이를 ‘린 생산’이라 명명하며 세계적 표준으로 만든 것도 그 확장의 한 국면이었다.11

스피어와 보웬은 TPS를 흉내 낸 기업들이 왜 실패하는지를 물었다. 그들의 답은 TPS의 본질이 간판이나 안돈 같은 도구가 아니라, 모든 작업을 검증 가능한 가설로 설계하고 현장의 작업자가 그 가설을 끊임없이 시험하게 만드는 규칙에 있다는 것이었다.2 도구는 보이지만 규칙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도구만 옮긴 이식은 실패한다.

TPS의 인간성에는 그늘도 있다. 1970년대 초 도요타 공장에서 계절공으로 일한 가마타 사토시는 컨베이어 속도와 노동 강도의 압박을 기록으로 고발했다.12 반면 애들러는 GM과 도요타의 합작 공장 NUMMI를 연구하며, 표준작업이 노동자를 옥죄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노동자가 스스로 설계하고 개선하는 학습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는 후자를 ‘민주적 테일러리즘’이라 불렀다.13 두 기록을 함께 놓으면 하나의 교훈이 남는다. TPS의 인간 존중은 원리에 자동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그것은 운영의 결과다. 이 긴장은 뒤에서 보듯 디지털 공장에서도 그대로 되풀이된다.

3. TPS의 한계는 어디에서 오는가

TPS의 한계를 말하는 글은 많다. 그러나 그 한계는 성격이 다른 세 가지로 나누어 볼 때 비로소 선명해진다.

원리의 한계가 아니라 이식의 한계

TPS 도입 실패의 상당수는 앞서 본 대로 도구 모방에서 비롯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디지털 전환이 정확히 같은 문법으로 실패한다는 점이다. WEF와 맥킨지는 2019년 첫 등대 백서에서 산업 기업의 70% 이상이 이른바 ‘파일럿 연옥(pilot purgatory)’에 머물러 있고, 신기술을 대규모로 확산하고 있는 기업은 29%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다.1 2025년 MIT NANDA 연구진은 예비 조사에서 생성형 AI에 투자한 조직의 95%가 측정 가능한 손익 효과를 얻지 못했다고 발표하며, 그 원인을 모델 품질이 아니라 피드백을 기억하고 맥락에 적응하는 ‘학습의 부재’에서 찾았다.14 표본의 한계는 감안해야 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도구는 간판에서 AI로 바뀌었어도 실패의 문법은 바뀌지 않았다. 학습하는 조직 없이 이식된 도구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설계 조건의 한계

JIT는 공급의 안정성을 전제한다. 재고를 줄일수록 흐름은 날렵해지지만 충격에는 약해진다. 이 취약성은 실재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공급망이 끊긴 뒤, 도요타는 반도체처럼 조달 기간이 긴 부품에 대해 공급사가 두 달에서 여섯 달치 재고를 보유하도록 하는 사업연속성계획(BCP)을 도입했다. 2021년 세계적 반도체 대란에서 도요타가 경쟁사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타격을 받은 배경으로 이 조치가 지목되었다.15 이 사례는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한다. JIT의 취약성은 사실이다. 그리고 TPS는 그 취약성을 스스로 학습해 고쳤다. TPS 비판의 상당수는 살아 움직이는 도요타가 아니라 1980년대 교과서 속 TPS를 겨냥하고 있다.

헤이준카(平準化)가 다품종 생산에 불리하다는 통념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도요타는 TPS를 사양이 다른 차량을 한 대씩 섞어 흘리는 생산으로 설명한다.16 평준화는 다양성을 거부하는 원리가 아니라 다양성을 흐름 안에 녹이는 기법이다. 한계는 다양성 그 자체가 아니라, 변동의 속도와 예측 불가능성이 사람의 계획 능력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나타난다.

데이터 규모의 한계: 진정으로 새로운 조건

겐치겐부츠(現地現物), 곧 현장에 가서 현물을 보라는 원칙은 사람의 눈과 발을 전제한다. 그러나 오늘의 공장에서는 수많은 센서가 초 단위로 데이터를 쏟아내고, 가치사슬은 대륙을 가로지른다. 이 규모는 인간의 인지 범위를 넘는다. 여기서 AI는 사치가 아니라 필요가 된다. 다만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폴라니가 말했듯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17 숙련자의 손끝에 쌓인 암묵지는 데이터로 온전히 치환되지 않는다. 데이터는 현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눈이 더 멀리, 더 먼저 보게 하는 망원경이어야 한다.

4. 등대 네트워크의 8년: 검증된 연대기

이제 GLN을 보자. 2018년 다보스 연차총회의 결정으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1,000곳이 넘는 제조사를 훑고 150여 곳을 접촉해 현장 실사를 거친 뒤, 전문가 패널을 통해 첫 16곳을 선정했다.1 이어 2019년 7월 10곳이 더해졌고,18 2020년 1월에는 44곳에 이르렀다.19 한국에서는 포스코(2019)와 LS일렉트릭(2021)에 이어 2022년 3월 LG전자 창원 LG스마트파크가 국내 가전업계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20

네트워크는 2022년 10월 114곳, 2023년 12월 153곳, 2025년 1월 189곳을 거쳐 2025년 9월 201곳이 되었다.4 이때 선정 체계도 바뀌었다. 공장·가치사슬·지속가능성으로 나누던 방식 대신 고객 중심, 생산성, 공급망 회복력, 지속가능성, 인재의 다섯 부문에서 탁월성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개편된 것이다.4 2026년 1월에는 23곳이 새로 합류해 220곳을 넘어섰고,21 2026년 6월 중국 다롄에서 16건의 신규 지정이 발표되며 238곳이 되었다.22

필자는 이 연대기를 다섯 국면으로 읽는다. 아래 표의 국면 구분은 WEF나 맥킨지의 공식 분류가 아니라, 공개 자료에 드러난 강조점의 이동을 바탕으로 한 필자의 해석임을 밝혀 둔다.

표 1. 글로벌 등대 네트워크의 국면 변화 (국면 구분은 필자 해석, 이정표는 공개 자료 기준)
국면과 시기강조점의 이동공개 자료로 확인되는 이정표
개념 증명
2018~2019
4차 산업혁명 기술이 파일럿을 넘어 대규모로 작동함을 입증첫 16곳 선정. 백서가 ‘생산시스템 혁신’과 ‘E2E 가치사슬 혁신’이라는 두 경로를 제시1
가치사슬로의 확장
2020~2022
공장 담장을 넘어 공급망 전체의 연결2020년 1월 44곳19, 2022년 10월 114곳. 지속가능성 등대 지정 본격화4
규모의 설계
2023~2024
처음부터 확산을 전제로 설계2023년 12월 신규 21곳, 총 153곳. 등대의 82%가 ‘규모’를 가장 중요한 설계 고려사항으로 꼽음23
사람과 프로세스의 재발견
2024~2025
기술보다 조직의 흡수 능력사람·프로세스 투자가 신기술 투자의 약 4배. ‘프로세스 부채’와 ‘확산 정체’ 개념 부상24,25
운영의 재배선
2025~2026
AI를 핵심 운영에 내장하고 성과 범주를 재정의5대 부문 체계로 개편(2025.9)4, 산업 AI 플랫폼 루미나 출범(2026.1)21, 238곳(2026.6)22

5. 등대가 발견한 것은 정말 새로운가

GLN이 최근 가장 힘주어 전하는 교훈은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다. 맥킨지의 2025년 분석에 따르면 등대 사업장들은 신기술 혁신에 2달러를 쓸 때마다 프로세스 부채 해소에 3달러, 확산과 정착에 5달러를 배정한다. 사람과 프로세스라는 기반에 기술 투자의 약 네 배를 쓰는 셈인데, 다른 제조사들은 그 비율이 한두 배에 그친다.24 여기서 ‘프로세스 부채’란 업무 방식을 바꾸지 않은 채 신기술만 덧씌울 때 쌓이는 비효율, 말하자면 신기술의 가치를 갉아먹는 세금이다.26 맥킨지는 또 오늘의 선도 기업들이 부딪힌 벽이 파일럿 연옥이 아니라, 초기 성공이 전사 성과로 번지지 못하는 ‘확산 정체(scaling slump)’라고 진단하며, 등대들이 이를 현장 인력과 함께하는 현지화된 채택으로 넘어서고 있다고 보았다.25

이 교훈을 오노가 들었다면 무엇이라 했을까. 아마 새로울 것이 없다고 했을 것이다. 낭비를 그대로 둔 채 자동화하면 낭비가 빨라질 뿐이라는 것은 린 공동체의 오래된 상식이다. 지도카의 본질은 기계를 멈추는 장치가 아니라 문제를 드러내어 사람이 배우게 하는 구조였다. 프로세스 부채는 디지털 시대에 붙은 무다의 새 이름이고, 현장 주도형 채택은 겐치겐부츠와 카이젠의 다른 표현이다. WEF의 2019년 첫 백서도 이미 이 연결을 보여 준다. 첫 등대 가운데 하나인 BMW 레겐스부르크 공장은 린 프로세스를 갖춘 고도화된 공장이 디지털 제조로 다음 성과 단계에 오른 사례로 소개되었다.1 첫 등대들은 린의 토대 위에 서 있었다.

학술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인더스트리 4.0과 린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부어 등은 두 영역이 모두 분산된 통제를 활용하며 생산성과 유연성의 향상을 지향한다는 공통점을 짚었다.27 후속 연구는 린과 디지털화가 운영 성과에 보완적으로 작용한다는 실증을 내놓았고,28 브라질 제조기업을 분석한 토르토렐라와 페테르만도 린 실천과 인더스트리 4.0 기술을 함께 도입할 때 성과 개선이 더 크게 나타난다고 보고했다.29 독일 연구진은 이미 2015년에 인더스트리 4.0 기술이 가능케 하는 ‘린 자동화’를 제안했다.30 요컨대 학계의 주류 견해는 대체가 아니라 결합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는 도요타 자신에게서 나온다. 도요타 생산디지털변혁실은 2022년, AI 전문 지식이 없는 현장 직원도 필요한 머신러닝 모델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AI 플랫폼’을 사내에서 개발해 현장에 내놓았다.31 아이치현 다카오카 공장에서는 이 플랫폼으로 만든 모델이 로봇의 접착제 도포 상태를 검사하게 되었고, 하루 두 명이 매달리던 육안 검사 인력이 더 부가가치 높은 일로 옮겨 갔다.31 도요타는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지도카와 JIT를 직접 언급한다.32 AI를 전문가의 도구에서 현장의 도구로 옮긴 이 선택은, 문제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사람이 개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TPS의 오래된 원칙을 디지털로 옮긴 것이다. 이것은 TPS의 종언이 아니라 TPS의 AI화다.

표 2. TPS의 원리와 GLN이 보여 준 교훈의 대응 (필자 작성)
TPS의 원리GLN이 보여 준 교훈관계
사람 존중, 현장 주도 개선사람·프로세스에 기술의 약 4배 투자, 현장 인력과 함께하는 현지화된 채택24,25계승
무다의 제거프로세스 부채를 먼저 해소한 뒤 기술 도입24계승 (새 이름)
표준작업은 개선의 토대검증된 솔루션의 자산화와 표준 플랫폼을 통한 확산25계승과 확장
지도카: 이상 발생 시 정지와 원인 제거AI와 디지털 트윈에 의한 이상 징후의 사전 예측20확장 (사후에서 사전으로)
JIT와 간판: 후공정이 당기는 흐름공장에서 소비자까지 E2E 가치사슬 동기화21확장 (공장에서 가치사슬로)
헤이준카: 섞어 흘리는 평준화 생산한 라인에서 냉장고 58종 동시 생산20계승과 확장
신뢰할 수 있고 철저히 검증된 기술만 사용10빠른 개념 검증과 신속한 확산1긴장
명시적 지표 없음지속가능성과 인재를 독립된 성과 부문으로 측정4신규

6.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으로 새로운가

계승의 흔적이 짙다고 해서 새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네 가지를 GLN의 고유한 기여로 본다.

첫째, 시간축의 이동이다. 지도카가 이상이 ‘발생한 순간’ 멈추는 원리라면, 디지털 트윈과 AI는 이상이 ‘발생하기 전의 신호’를 읽는다. LG스마트파크의 지능형 공정 시스템은 30초마다 공장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10분 뒤 생산라인 상황을 예측하고, 딥러닝으로 불량 가능성과 설비 고장을 사전에 감지한다.20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방으로의 이동은 TPS의 목적을 바꾸지 않지만, 그 목적에 닿는 시간을 앞당긴다.

둘째, 범위의 확장이다. 2026년 1월 코호트에는 다단계 유통망을 걷어 내고 공장에서 소비자로 곧바로 이어지는 가치사슬을 구축해 납기와 재고를 크게 줄인 사례들이 포함되었다.21 TPS의 흐름이 공장과 협력사의 경계 안에서 설계되었다면, GLN의 흐름은 수요 예측부터 설치 서비스까지 이어진다.

셋째, 측정되는 가치의 확장이다. 2025년 개편 이후 인재와 지속가능성은 생산성과 대등한 독립 부문이 되었다.4 인재 부문의 정의에는 작업 설계와 안전이 명시되어 있다. 예컨대 슈나이더 일렉트릭 우한 사업장은 학교와 함께 설계한 디지털 도제 과정과 AI 기반 맞춤형 역량 교육으로 신규 인력의 적응 기간을 75일에서 15일로 줄였다.21 필자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사람 중심’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지표는 안전이다. 안전은 사람을 비용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지를 가장 먼저 보여 준다. 등대의 인재 부문이 이 지표를 얼마나 무겁게 다루는지는 앞으로 지켜볼 대목이다.

넷째, 학습의 인프라화다. WEF는 2026년 1월, 8년간의 등대 데이터와 1,000건이 넘는 산업 전환 사례를 모은 AI 기반 산업 인텔리전스 플랫폼 ‘루미나(Lumina)’를 출범시켰다. 이 데이터에 따르면 성공한 전환의 94%가 여러 기술 영역을 결합했고, 기술을 인력·지속가능성 이니셔티브와 함께 추진한 등대들은 평균 16% 이상 높은 성과를 냈다.21 TPS가 도요타라는 한 조직 안에서 학습을 축적했다면, GLN은 그 학습을 산업 차원의 공유 자산으로 만들려 한다. 같은 발표에서 WEF가 오늘의 경쟁력은 효율만으로 정의되지 않으며 감지하고 적응하고 대응하는 속도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 것은 이 변화의 핵심을 짚는다.21

7. 사례 재검증: LG스마트파크를 다시 읽다

등대 사례는 인용될수록 숫자가 부풀기 쉽다. 그래서 이 글은 LG스마트파크에 관해 기업이 공식적으로 밝힌 수치만 사용한다. LG전자에 따르면 이 사업장은 2022년 3월 WEF 등대공장으로 선정되었다. AI·빅데이터·디지털 트윈을 결합한 지능형 공정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고, 최대 30kg의 자재를 나르는 고공 컨베이어와 최대 600kg의 적재함을 옮기는 5G 기반 물류로봇, 스스로 재고를 파악해 공급을 요청하는 지능형 무인창고를 갖췄다. 화염이 발생하는 용접과 약 20kg의 냉장고 도어 조립은 로봇이 맡는다. 그 결과 생산성이 20% 높아졌고, 신모델 생산라인 구축 기간이 30% 짧아졌으며, 에너지저장장치와 건물 에너지 관리 솔루션으로 에너지 효율을 약 30% 개선했다.20

필자가 이 사례에서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모듈러 설비와 AI를 통해 색상과 크기, 판매 지역이 다른 냉장고 58종을 한 라인에서 동시에 생산한다는 점이다.20 이것은 TPS를 넘어선 것이라기보다, 헤이준카가 지향하던 섞어 흘리는 생산을 디지털 기술로 한 단계 끌어올린 모습이다. 위험하고 무거운 작업을 로봇에 맡기고 사람은 공정을 관찰하고 통제하는 일에 집중하게 한 설계 역시, 어머니의 일을 덜어 주려던 사키치의 지도카 정신과 멀지 않다.8

8. 등대의 그늘: 비판적으로 읽기

등대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그 빛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알아야 한다. 연구자의 눈으로 GLN 자료를 읽을 때 적어도 다섯 가지를 유의해야 한다.

첫째, 선택 편향이다. GLN은 성공한 사업장을 골라 인정하는 제도다. 같은 기술에 투자하고도 실패한 사업장은 기록되지 않는다. 따라서 등대의 성과는 ‘가능성의 증거’이지 ‘평균적인 기대값’이 아니며, 등대에서 관찰된 기술과 성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둘째, 자기보고 지표다. 2019년 백서의 성과표부터 출처가 등대 사업장으로 표기되어 있듯,1 성과 수치는 대체로 사업장이 제출한 것이고 기준 연도와 지표 정의가 사례마다 다르다. 사례 사이의 수치 비교는 신중해야 한다.

셋째, 이해관계의 구조다. 맥킨지는 GLN의 공동 설립자이자 자문위원회 구성원이다. WEF와 맥킨지는 모든 지정이 산업계와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독립 동료평가 패널을 통해 이루어지며, 외부 자문을 받았는지는 평가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힌다.4 독자는 이 두 사실을 함께 놓고 읽어야 한다.

넷째, 지리적 편중이다. 2026년 1월 발표된 23곳 가운데 16곳이 중국 사업장이다(필자 집계).21 이는 중국 제조업의 역동성을 보여 주는 동시에, 등대 지정이 산업정책과 맞물린 일종의 인증 경쟁이 되었음을 시사한다. 등대의 수를 곧바로 국가 제조 경쟁력의 척도로 읽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인간 측면의 과소 측정이다. 2019년 백서는 등대들이 노동자를 거의 대체하지 않고도 효율을 높였다고 보고했지만,1 노동 강도와 숙련의 재편, 장기 고용 효과를 추적한 독립적 검증은 여전히 드물다. TPS의 인간성이 운영의 결과였듯, 디지털 공장의 인간성도 기술이 아니라 운영이 결정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인더스트리 5.0’을 제시하며 인간 중심성과 회복력, 지속가능성을 산업의 방향으로 명시한 것도 이 공백에 대한 응답으로 읽을 수 있다.33

9.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한국 제조업을 위한 다섯 가지 명제

이상의 논의를 한국 제조 현장의 언어로 옮기면 다음 다섯 가지 명제가 된다.

  1. 등대는 목표가 아니라 좌표다. 등대 지정 자체를 목표로 삼는 순간, 조직은 심사를 위한 기술 목록을 쌓기 시작한다. 등대 사례는 우리 조직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좌표로 쓸 때 가장 쓸모가 있다.
  2. 기술 예산을 세울 때 사람과 프로세스 예산을 함께 세우라. 등대의 ‘약 네 배’라는 비율은 처방이 아니라 참조점이다.24 그러나 그 비율이 한두 배에 머문다면, 그 조직은 파일럿 연옥이나 확산 정체로 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3. 자동화하기 전에 프로세스를 먼저 고쳐라. 디지털 투자에 앞서 가치흐름을 다시 그리고, 없애야 할 공정부터 없애는 것이 프로세스 부채를 막는 가장 값싼 방법이다.
  4. 현장이 AI를 만들게 하라. 도요타의 AI 플랫폼이 보여 주듯, AI의 민주화는 지도카의 21세기적 형태다.31 문제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사람이 해법을 만들 수 있어야 개선이 멈추지 않는다.
  5. 사람 중심을 측정하라. 안전, 숙련 형성, 이직, 학습 시간을 생산성과 같은 무게의 지표로 관리하지 않는 한, ‘사람 중심’은 구호에 머문다.

에필로그: 다시, 등대 앞에서

TPS에서 GLN으로의 이행은 교체가 아니라 확장된 계승이다. GLN은 예측의 시간축, 가치사슬 전체로 넓어진 범위, 지속가능성과 인재를 성과로 측정하는 관점, 그리고 산업 차원의 학습 인프라를 더했다. 그러나 그 성과를 지속시키는 힘은, 8년간의 등대 기록이 스스로 고백하듯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프로세스에 있다.

등대의 빛은 결국 오노가 현장에서 붙들고 있던 질문으로 우리를 돌려보낸다. 이 공정에서 사람은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AI는 이 질문에 대신 답해 주지 않는다. 다만 더 빠르게, 더 멀리 묻게 해 줄 뿐이다. 등대는 길을 비출 뿐이다. 배를 모는 것은 언제나 현장의 사람들이다.

참고문헌

이 글의 수치와 연대기는 2026년 9월 25일까지 공개된 1차 자료(WEF 백서·보도자료, 맥킨지 보고서, 기업 공식 발표, 학술지 논문)로 확인한 것이다.

  1. World Economic Forum & McKinsey & Company. (2019).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Beacons of technology and innovation in manufacturing [White paper]. https://www3.weforum.org/docs/WEF_4IR_Beacons_of_Technology_and_Innovation_in_Manufacturing_report_2019.pdf ↩
  2. Spear, S., & Bowen, H. K. (1999). Decoding the DNA of the Toyota Production System. Harvard Business Review, 77(5), 96–106. ↩
  3. Toyota Motor Corporation. (2012). Toyota Production System. In 75 years of Toyota. https://www.toyota-global.com/company/history_of_toyota/75years/data/automotive_business/production/system/change.html ↩
  4. de Kroon, D., Shahani, R., & Heuss, R. (2026, July 13). The continuing evolution of the Global Lighthouse Network. McKinsey & Company. https://www.mckinsey.com/capabilities/operations/our-insights/the-continuing-evolution-of-the-global-lighthouse-network ↩
  5. Kuhn, T. S. (1962).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6. Kagermann, H., Wahlster, W., & Helbig, J. (2013). Recommendations for implementing the strategic initiative INDUSTRIE 4.0: Final report of the Industrie 4.0 Working Group. acatech. ↩
  7. Toyota Motor Corporation. (n.d.). Toyota Production System. https://global.toyota/en/company/vision-and-philosophy/production-system/ ↩
  8. Toyota Motor Corporation. (n.d.). Toyota virtual factory tour: Production system. https://global.toyota/en/company/plant-tours/production-system/ ↩
  9. 大野耐一. (1978). 『トヨタ生産方式: 脱規模の経営をめざして』. ダイヤモンド社. [영역본: Ohno, T. (1988). Toyota production system: Beyond large-scale production. Productivity Press.] ↩
  10. Liker, J. K. (2004). The Toyota way: 14 management principles from the world’s greatest manufacturer. McGraw-Hill. ↩
  11. Womack, J. P., Jones, D. T., & Roos, D. (1990). The machine that changed the world. Rawson Associates. ↩
  12. 鎌田慧. (1973). 『自動車絶望工場: ある季節工の日記』. 現代史出版会. [영역본: Kamata, S. (1982). Japan in the passing lane: An insider’s account of life in a Japanese auto factory. Pantheon.] ↩
  13. Adler, P. S. (1993). Time-and-motion regained. Harvard Business Review, 71(1), 97–108. ↩
  14. Challapally, A., Pease, C., Raskar, R., & Chari, P. (2025). The GenAI divide: State of AI in business 2025 [Preliminary report]. MIT NANDA. ↩
  15. Shirouzu, N. (2021, March 9). How Toyota thrives when the chips are down. Reuters. https://www.nippon.com/en/news/reu20210309KBN2B1004/ ↩
  16. Toyota Manufacturing UK. (n.d.). Toyota Production System. https://www.toyotauk.com/how-we-manufacture/toyota-production-system.html ↩
  17. Polanyi, M. (1966). The tacit dimension. Doubleday. ↩
  18. World Economic Forum. (2019, July 3). Scaling intelligent manufacturing: 10 factories leading the way in innovation [Press release]. https://www.weforum.org/press/2019/07/scaling-intelligent-manufacturing-10-factories-leading-the-way-in-innovation ↩
  19. World Economic Forum. (2020, January). Factories of the future [Forum Stories]. https://www.weforum.org/stories/2020/01/factories-of-the-future-innovation-manufacturing/ ↩
  20. LG전자. (2022, 3월 31일). LG전자 창원 ‘LG 스마트파크’, ‘세계경제포럼(WEF) 등대공장’ 선정 [보도자료]. https://www.lg.co.kr/media/release/24624 ↩
  21. World Economic Forum. (2026, January 15). Global Lighthouse Network recognizes 23 new sites, launches AI platform for industrial transformation [Press release]. https://www.weforum.org/press/2026/01/global-lighthouse-network-recognizes-23-new-sites-launches-ai-platform-for-industrial-transformation/ ↩
  22. World Economic Forum. (2026, June 22). New Global Lighthouse sites demonstrate how AI is rewiring manufacturing and supply chains [Press release]. https://www.weforum.org/press/2026/06/new-global-lighthouse-sites-demonstrate-how-ai-is-rewiring-manufacturing-and-supply-chains/ ↩
  23. World Economic Forum. (2023, December 14). Factories of the future show how to apply AI to benefit people, planet and performance [Press release]. https://www.weforum.org/press/2023/12/factories-of-the-future-show-how-to-apply-ai-to-benefit-people-planet-and-performance ↩
  24. McKinsey & Company. (2025, April 23). Preventing process debt and other Lighthouse lessons. https://www.mckinsey.com/capabilities/operations/our-insights/lighthouse-lessons-four-mindsets-to-make-digital-transformation-stick ↩
  25. McKinsey & Company. (2025, February 21). Lessons from the Lighthouses. https://www.mckinsey.com/capabilities/operations/our-insights/lessons-from-the-lighthouses ↩
  26. Subramanian, S., & Yousufani, M. (2024, June 27). AI success depends on tackling “process debt.” Harvard Business Review. ↩
  27. Buer, S.-V., Strandhagen, J. O., & Chan, F. T. S. (2018). The link between Industry 4.0 and lean manufacturing: Mapping current research and establishing a research agenda. International Journal of Production Research, 56(8), 2924–2940. https://doi.org/10.1080/00207543.2018.1442945 ↩
  28. Buer, S.-V., Semini, M., Strandhagen, J. O., & Sgarbossa, F. (2021). The complementary effect of lean manufacturing and digitalisation on operational performance. International Journal of Production Research, 59(7), 1976–1992. https://doi.org/10.1080/00207543.2020.1790684 ↩
  29. Tortorella, G. L., & Fettermann, D. (2018). Implementation of Industry 4.0 and lean production in Brazilian manufacturing companies. International Journal of Production Research, 56(8), 2975–2987. ↩
  30. Kolberg, D., & Zühlke, D. (2015). Lean automation enabled by Industry 4.0 technologies. IFAC-PapersOnLine, 48(3), 1870–1875. https://doi.org/10.1016/j.ifacol.2015.06.359 ↩
  31. Google Cloud Japan Team. (2023, June 23). トヨタ: 製造現場が自らモデル生成できる “AI プラットフォーム” を Google Cloud とのハイブリッド クラウドで開発・運用. Google Cloud Blog. https://cloud.google.com/blog/ja/topics/customers/toyota-develops-and-operates-its-ai-platform-in-a-hybrid-cloud ↩
  32. Gotoh, K. (2024, December 9). Toyota shifts into overdrive: Developing an AI platform for enhanced manufacturing efficiency. Google Cloud Blog. https://cloud.google.com/blog/topics/hybrid-cloud/toyota-ai-platform-manufacturing-efficiency ↩
  33. Breque, M., De Nul, L., & Petridis, A. (2021). Industry 5.0: Towards a sustainable, human-centric and resilient European industry. European Commission, Publications Office of the European Union. ↩